영화 ‘말모이’ 실존 모델 이극로, 96년 전 독일서 한국어강좌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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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 실존 모델 이극로, 96년 전 독일서 한국어강좌 개설
  • 이진태 기자
  • 승인 2019.10.0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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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독일서 ‘한국어 수업’…독일 정부 공식 문서 등 관련기록 공개
지난 1923년 독일 훔볼트대에 이극로 선생의 한국어 강좌 개설을 허가하는 공문서/자료=국가기록원
지난 1923년 독일 훔볼트대에 이극로 선생의 한국어 강좌 개설을 허가하는 공문서/자료=국가기록원

한글날을 앞두고 영화 ‘말모이’ 실제 모델인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극로(1893~1978년) 선생이 96년 전 독일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고 한글을 가르쳤다는 흔적이 담긴 기록물이 공개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를 이끈 이극로 선생이 독일유학 중이던 1923년 유럽 최초로 프리드리히 빌헬름대학(현재는 훔볼트대)에 개설한 한국어강좌 관련 독일 당국의 공문서와 자필서신 등을 수집해, 제공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관련기록은 국가기록원이 지난 2014년 독일 국립 프로이센문화유산기록보존소에서 수집한 기록물 6철 715매 가운데 11매다.

독일서 수집한 이 기록에는 1868년 발생했던 독일인 오페르트의 남연군묘 도굴사건 보고서, 한국주재 독일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정세보고서 등 19~20세기 초 한국 정치·경제·외교 관련 기록물 등이 포함돼 있다. 

기록물 11매 가운데 공문서는 5매로 훔볼트대 동양학부와 독일 문교부, 이극로가 한국어강좌 개설과 관련 주고받은 것이다. 1923년 8월10일 동양학부 발송 975호는 학장대리가 문교부 장관에게 한국어강좌 개설허가를 요청한 것이다. 같은 해 8월31일 문교부 발송 8593호는 이를 허가한다는 내용이며, 이는 이극로의 요청으로 유럽 최초로 훔볼트대에 한국어강좌가 개설됐음을 입증하는 공문서다.

나머지 6매는 이극로 선생이 타자기로 작성한 문건이 2매, 자필 편지 2매, 기타 2매(초안 추정)다. 

공개된 문건에서 이극로 선생은 1925년 1월30일 동양학부 학장에게 보낸 서신에서 “한국어는 동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언어로 대한민국·만주·동시베리아에서 2000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며 “한글은 매우 독특하고 실용적 측면 외에 언어학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글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독일에는 한국어를 아는 이가 거의 없는데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독일에 전하기 위해 3학기 동안 무보수로 한국어 강의를 제공해 12명의 학생이 수강했다”며 “동아시아 언어에 대한 관심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고 한국어 강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지금까지는 1922년 훔볼트대 철학부에 입학한 이극로가 몽골어를 수강하던 중 동료 학생들에게 틈틈이 한국어를 가르쳤는데, 이들이 강좌개설을 요청해 이를 대학에 건의하면서 성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2007년 이 기록을 발굴해 국내에 처음 발표한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장은 “이때의 경험이 경제학 박사인 이극로가 훗날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맡아 ‘조선어 큰사전’ 편찬을 주도하고, 주시경과 함께 한글 사업을 완수한 어문운동가의 길을 걷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며 “이 기록은 96년 전 이미 유럽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강좌가 있었음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독일 학계에 알려진 1952년 한국어 강좌 최초 개설을 29년이나 앞당긴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이극로 선생의 어문학적 업적을 연구해 온 차민기 경희대 박사는 “이극로는 학업을 마친 이후에도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독일과 프랑스, 영국에 머물렀는데, 프랑스와 독일의 음성실험실에서는 한국어 음성실험에 피실험자로 직접 참여했으며, 귀국 후 이를 토대로 한국어 음성학 이론의 기틀을 마련했다”면서 “해외유학과 그 이후 맺은 인맥을 중심으로 조선어학회 재정과 대외관계를 이끌었다. 일제강점기 연구와 어문운동에 전념한 그의 업적이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선표 나라역사연구소장은 “이극로는 유럽 최초 유학생 단체인 유덕(당시는 독일을 덕국으로 표기)고려학우회에서 민족의식 고취와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이라며 “독일인 부르크하르트가 관동대지진 때 일어난 재일한인 참상을 독일신문에 기고하자 그를 찾아가 일본의 대량학살 진상을 듣고, 1923년 10월 26일 베를린에서 유럽 최초의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해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한글학자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로서도 재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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